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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흐릿한암석48
댓글 0건 조회 1회 작성일 26-07-24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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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년 정묘년 봄 정월 기미일, 임씨·뇌씨의 여러 도적이 효감과 덕안으로 달아났고, 관군이 패하여 총병 장수산이 전사하였다. 임술일, 정원을 다시 수복하였다. 병인일, 관문의 총독 직을 파면하고 서울로 불러들였다. 이홍장을 호광총독으로 삼고, 이한장을 강소순무로 옮겼으며, 유곤을 호남순무로 삼았다. 기사일, 장석영이 서안 어화진에서 염적을 토벌하다 전사하였다. 유송산의 군대가 크게 승리하였다. 교송년에게 섬서의 군무를 전담하게 하였다. 신미일, 좌종당을 흠차대신으로 삼아 섬서와 감숙의 군무를 총괄하게 하고, 유전에게 삼품 경함을 내려 군무를 돕게 하였다. 을해일, 하밀의 회적이 파리곤으로 달아났으나 관군이 이를 격퇴하였다. 눌이제가 병으로 면직되고, 이륵둔을 파리곤 영대대신으로 삼았다. 병자일, 서계여에게 다시 총리아문에서 근무하게 하고 새로 설치한 동문관의 업무를 맡게 하였다. 기묘일, 관군이 진웅을 다시 수복하였다.이월 을유삭, 유명전이 종상에서 임씨와 뇌씨를 추격하여 토벌했으나 패하였다. 포초가 진격하여 크게 무찔렀다. 경인일, 이홍장에게 군대를 거느리고 하남으로 가게 하였다. 임진일, 서울에 전염병이 돌았다. 갑오일, 유송산을 광동 육로제독으로 승진시켰다. 정유일, 섬서의 회적 마생언 등이 항복하였다. 광주에 속한 지역의 쌀 대신 거두는 은 십구만여 냥을 감면하고 영구한 법으로 삼았다. 을사일, 계군이 사성을 다시 수복하였다. 경술일, 정부정을 산동순무로 삼았다. 신해일, 조주가 다시 함락되었다. 임자일, 운귀총독 노동광이 죽어 장개숭으로 대신하게 하였다.삼월 정사일, 악군이 기수에서 적을 토벌하다 패하여 도원 팽육귤 등이 전사하였다. 계해일, 총병 단계운의 군대가 부주에서 무너졌다. 무진일, 포초가 여러 차례 병을 이유로 사직을 청하였으나 황주로 가도록 명하였다. 을해일, 왜인을 총리아문에서 근무하게 하였으나 사양하였고, 허락하지 않았다. 정축일, 이운린 등에게 신강의 난민을 안치하도록 명하였다. 신사일, 조극충의 군대가 조주를 다시 수복하였다. 임오일, 회적 마점오 등이 서녕을 침범하였다. 이 봄, 절강 인화 등 지역과 산서 평정 등 여러 곳에서 난으로 밀린 세금과 창고의 곡식 빚을 면제하였다.여름 사월 정해일, 유구국 자제들의 국자감 입학을 허락하였다. 포초에게 병가를 내렸다. 무자일, 하관의 군대가 하밀을 다시 수복하였다. 기축일, 주조배가 죽었다. 계사일, 길림의 마적을 평정하였다. 병신일, 에스파냐 사신이 와서 조약을 교환하였다. 임인일, 유송산이 동주에서 염적과 회적을 크게 격파하였다. 병오일, 하밀에서 순절한 자사극 군왕 백석이 친왕에게 추증하고 사당을 세웠다. 덕륵극다이제가 병으로 면직되어 인흥을 오리야소태 장군으로 삼고, 영전을 참찬으로 옮겼다. 정미일, 첨대의 번인 우두머리 대개절포를 처형하였다. 경술일, 귀덕의 회적이 반란을 일으켜 청성을 함락하였다.​오월 갑인일, 하밀의 회적이 옥문으로 달아났으나 관군이 이를 격퇴하였다. 가뭄이 들어 난민을 구휼하고, 갓난아이를 기르며, 길에 버려진 시신을 거두고, 전사자의 유가족을 부양하도록 명하였다. 무오일, 널리 서적을 구입하고, 어찬 흠정 경서와 역사서를 다시 간행하여 각 학교에 반포하도록 하였다. 기미일, 곽보창과 유송산의 두 군대가 조읍에서 장총우를 격파하였다. 곽보창의 유배형을 면제하였다. 신유일, 증국번을 대학사로 삼고, 낙병장을 협판대학사로 삼았다. 병인일, 여러 재판을 정리하도록 조서를 내렸다. 정묘일, 계군이 여파와 의녕을 다시 수복하였다. 무진일, 바른말을 구하는 조서를 내리고 궁정의 경비를 조사하여 감축하였다. 기사일, 염적이 운하를 건너자 정부정을 엄히 논죄하였다. 경오일, 적이 장원으로 달아났으나 관군이 이를 격퇴하였다. 계유일, 적 토벌에 공이 없음을 이유로 증국전의 정대를 박탈하고, 이해년과 함께 해당 관청에 내려 엄히 논죄하였다. 이홍장에게 죄를 지고도 공을 세우도록 타일렀다. 서울에 지진이 일어났다. 경진일, 동복상이 섬서 감천을 함락하였다.유월 갑신일, 총리아문에서 러시아인이 신강을 엿보고 있다고 아뢰자 대학사·상서·좌도어사와 총리아문 대신들에게 함께 의논하여 적절한 방책을 마련하게 하였다. 병술일, 주현에서 조량을 부당하게 더 거두는 일을 다시 금하였다. 갑오일, 왜인이 병을 이유로 사직을 청하자 직무를 면하게 하였으나 여전히 대학사로 홍덕전에 머물게 하였다. 을미일, 관군이 즉묵에서 염적에게 패하였다. 경자일, 순천과 직예에 오래 가뭄이 들어 기근이 발생하자 구휼하였다. 포초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였다. 신축일, 이홍장이 유명전·반정신 등의 군대에 격문을 보내 운하를 방어하고 교주와 내주를 막게 하였다. 성록에게 황조감과 왕인화의 두 군대를 지휘하게 하였다. 경기 지방에 심한 가뭄이 들어 민·광·감의 이금 삼십만 냥과 절강·복건 해관의 양세 삼십오만 냥을 구휼에 쓰도록 배정하였다. 계묘일, 감숙의 회적이 섬서 화정을 함락하였으나 곧 다시 수복하였다. 정미일, 창평의 예공 과일을 면제하였다. 기유일, 삼월부터 비가 오지 않자 황제가 거듭 비를 기원하였는데 이날 비가 내렸다. 이달에 섬서 건주 등 여러 고을의 재해와 난리로 인한 세금을 면제하였다.가을 칠월 기미일, 비가 내렸다. 섬서의 군대가 감천을 다시 수복하였다. 경오일, 영정하가 터졌다. 기묘일, 염적이 교래하를 지나자 각 방면의 군대에 하천과 운하를 엄수하게 하고, 정부정의 직을 박탈하였으나 그대로 유임시켰다. 이달에 호남 황주의 난으로 밀린 세금을 면제하였다.팔월 병술일, 봉천의 겨울 사냥을 중지하였다. 무자일, 호북의 도적 우두머리 유한충을 처형하였다. 경인일, 여배경에게 귀주의 토벌·회유와 둔전 업무를 함께 맡게 하였다. 임진일, 봉천의 군대가 고산·법고 등지의 도적을 평정하였다. 신묘일, 귀주 제독 서리 조덕광이 안평에서 적을 토벌하다 전사하였다. 병신일, 목륭아 등의 군대가 문안에서 흉악한 도적을 토벌하다 패하였다. 제양의 토적이 반란을 일으켰으나 토벌하여 평정하였다. 정유일, 서쪽의 회적이 요주를 침범하였다. 무술일, 귀주순무 장량기를 파면하고 엄히 논죄하였으며, 증벽광을 서리로 임명하고 포정사 엄수삼은 지체한 죄로 면직하였다. 임인일, 진국서를 서울로 불러들였다. 병오일, 회군과 초군이 지나가는 곳마다 소란을 일으키자 이홍장에게 군율을 엄히 시행하도록 명하였다. 기유일, 열하의 목재세를 폐지하였다. 경술일, 복건에 조선소를 새로 세웠다.구월 임자일, 좌종당이 조극충을 섬서로 옮기는 것을 허락하였다. 병진일, 뇌씨와 임씨의 여러 도적이 운하를 침범하였으나 우사한의 군대가 이를 격퇴하였다. 정사일, 하주·적도·서녕의 회족 무리가 귀순하였다. 경신일, 산동의 예공을 중지하였다. 신유일, 액로트 유목민을 액이제스하에 정착시켰다. 갑자일, 총리아문에서 장차 조약을 개정할 일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아뢰었다. 증국번 등에게 각자 의견을 올리도록 명하였다. 기사일, 정일창에게 상해로 가서 이탈리아와의 조약 교환을 처리하게 하였다. 임신일, 무산의 홍수 피해 백성을 구휼하였다. 정축일, 영전에게 곤가찰랍과 함께 카자흐 토벌과 회유 방책을 마련하게 하였다. 기묘일, 풍자재를 좌강으로 보내 남방과 태평군의 군무를 전담하게 하였다. 양양 등 여러 부의 재해 백성을 구휼하였다.​겨울 시월 계미일, 각지의 통병대신과 각 총독·순무에게 군율을 엄히 다시 시행하도록 명하였다. 갑신일, 찰합이도통 색이고선이 죽어 쿠룬판사대신 문성으로 대신하게 하였다. 을유일, 장정악을 쿠룬판사대신으로 삼았다. 병술일, 섬서의 군대가 영조량과 의군을 다시 수복하였다. 석보전의 군대를 원주로 보내 귀주를 지원하는 군무를 통솔하게 하였다. 임진일, 서쪽의 회적이 정원과 대요를 함락하였다. 계사일, 왕원방이 죽었다. 심계분에게 군기대신 아래에서 견습하게 하였다. 병신일, 증국전이 병으로 면직되어 곽백음을 호북순무로, 소봉문을 광서순무로 삼았다. 산동의 수재민을 구휼하였다. 을사일, 미국 전 공사 포안신을 조약을 맺은 여러 나라에 파견하여 대외 교섭을 맡게 하였다. 기유일, 회적이 보계와 정녕을 함락하였으나 곧 다시 수복하였다.십일월 경술삭, 도원 지강과 낭중 손가곡을 조약을 맺은 여러 나라에 보내 교섭사무대신으로 삼았다. 임자일, 유명전 등의 군대가 감유에서 적을 토벌하여 크게 승리하였고, 임주를 처형하였다. 계축일, 흉악한 도적이 번져나감을 이유로 유장우의 직을 박탈하였으나 그대로 공을 세우도록 하였다. 관문에게 직예총독 서리를 맡게 하였다. 병진일, 섬서의 군대가 낙천에서 염적을 토벌하다 회적을 만나 패하여 제독 이상화가 전사하였다. 계해일, 장총우가 연천과 수덕을 함락하였다. 갑자일, 부륜토해 판사대신을 새로 설치하여 이운린을 임명하고, 명요를 보좌하게 하였으며, 복제를 코브도 보판으로 삼았다. 갑인일, 유명전의 군대가 제성에서 적을 토벌하여 크게 승리하였다. 정축일, 섬서의 군대가 연천과 수덕을 다시 수복하였다.십이월 임오일, 장총우가 길주로 달아나자 좌종당과 조장령의 직을 박탈하였으나 그대로 유임시켰다. 성록이 숙주에서 회적을 토벌하다 패하여 총병 황조감이 전사하였다. 계미일, 진국서에게 일등 시위의 직을 내리고 좌종당의 군대에 소속시켰다. 유명전 등이 수광에서 적을 토벌하여 크게 승리하였다. 서쪽의 회적이 녹풍·광통·원모를 함락하였다. 기축일, 관군이 길주를 다시 수복하였다. 임진일, 직예의 흉악한 도적을 평정하였다. 갑오일, 유장우에게 삼품 정대를 내리고 그가 거느린 부대를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영정하 제방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병신일, 장익리를 안찰사 후보로 삼아 좌종당의 군대에 소속시키고 초용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정유일, 낙병장이 죽었다. 유송산 등이 홍동에서 장총우를 격파하였다. 오당을 사천총독으로 옮기고, 마신이를 민절총독으로 삼았으며, 이한장을 절강순무로 옮기고 정일창을 강소순무로 삼았다. 무술일, 회군이 고우에서 적을 토벌하여 크게 승리하고 뇌문광 등을 사로잡아 처형하였다. 신축일, 동쪽 염적이 평정되자 이홍장과 증국번에게 세직을 더해 주고, 유명전·영한·곽송림·양정훈·선경에게도 차등 있게 세직을 내렸으며, 증국전의 정대를 회복시켰다. 임인일, 좌종당에게 군대를 거느리고 산서로 들어가게 하고, 쿠크기태·교송년·유전에게 섬서의 군무를 총괄하게 하였다. 갑진일, 양점오를 감숙제독 서리로 삼아 서로의 군무를 이어 맡게 하였다. 무신일, 좌종당이 희창·유송산 등에게 격문을 보내 자주로 가서 적을 맞아 토벌하게 하였다. 장요와 유명전 등에게 합동으로 토벌하도록 명하였다. 기유일, 정돈근을 산서로 보내 사건을 조사하게 하였다. 이달에 절강 인화 등 지역의 개간되지 않은 염전 세금과 운남 숭명 등 여러 고을의 흉년으로 인한 공납 곡식을 면제하였다.​이해에 조선과 유구가 조공하였다.칠년 무진년 봄 정월 경술삭, 염적의 우두머리 이윤 등이 무리를 이끌고 우이에서 항복하자 조서를 내려 처형하고 나머지 무리는 해산시켰다. 주봉표를 협판대학사로 삼았다. 을묘일, 회적이 다시 정녕을 함락하였다. 병진일, 희창 등이 하내에서 장총우를 공격하여 크게 승리하였다. 서녕의 회적이 북천을 함락하였다. 이운린이 병으로 사직을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석륜을 부륜토해 보판대신으로 삼았다. 신유일, 장총우가 북쪽으로 정주까지 달아나자 보정에 계엄령을 내리고 관문과 좌종당의 직을 박탈하였으나 그대로 유임시켰다. 옥량에게 신기영 군사를 거느리고 적을 토벌하도록 명하였다. 임술일, 장총우가 청원을 침범하자 유송산·곽보창 등의 군대가 적의 앞을 우회하여 공격하였고 특별히 포상하였다. 진국서·송경·장요도 모두 군대를 이끌고 보정에 도착하였다. 달라이가 이당에서 동등공포를 범한 자의 사형을 용서해 하남 빙상장 달라고 청하자 허락하였다. 가정 등에게 단방총국을 설치하도록 명하였다. 계해일, 천진의 양총 부대와 연군 각 부대를 하간으로 보내 산동의 군대와 연계하여 방어와 토벌을 하도록 명하였다. 갑자일, 이홍장이 주성파 등의 군대를 북쪽으로 보내 지원하였다. 좌종당에게 서둘러 보정 북쪽으로 가서 토벌을 총지휘하게 하였다. 공친왕에게 신기영 대신들과 함께 순방을 맡게 하였다. 임신일, 영한이 경기 방위를 맡는 것을 허락하고 우사한의 군대를 거느려 황하 남쪽에 주둔하게 하였다. 정문병의 군대를 하간으로 보내 합동 토벌하게 하였다. 계유일, 장총우가 요양을 함락하였으나 곧 다시 수복하였다. 가정이 병으로 벼슬을 그만두었다. 을해일, 좌종당에게 각 방면 관군의 총지휘를 맡게 하였다.이월 신사일, 관군이 위원을 다시 수복하였다. 계미일, 공친왕에게 각 방면 통병대신을 지휘하게 하였다. 무자일, 회적이 다시 영조량을 함락하였다. 기축일, 회적이 이극사파이로 달아났으나 관군이 이를 격퇴하였다. 조장령과 진식의 직을 박탈하고 유배를 보냈다. 임진일, 섬서의 군대가 보계를 다시 수복하였다. 계사일, 운남의 군대가 진웅의 포위를 풀었다. 서쪽의 회적이 초웅을 함락하였다. 을미일, 하남과 안휘의 여러 군대가 속록에서 장총우를 격파하였다. 경자일, 좌종당과 이홍장 등의 군대가 적을 거듭 격파하였다. 회적이 회원과 신목을 함락하였다. 임인일, 백니의 묘적이 항복하였다. 을사일, 조선이 국경 단속을 강화해 달라고 청하자 연후와 혁용을 봉천으로 보내 도흥아와 함께 국경 확장 문제를 조사하게 하였다.삼월 임자일, 장개숭이 병을 이유로 사직을 청하자 머뭇거리며 회피한 것을 꾸짖고 직을 박탈하였다. 회적이 부주를 함락하자 유전이 삼원에 주둔하며 토벌을 지휘하였다. 계축일, 유악소를 운귀총독으로, 잠육영을 운남순무로 삼았다. 을묘일, 섬서의 군대가 부주를 다시 수복하였다. 계해일, 서길사의 산관 시험에서도 계속 시와 부를 시험하도록 명하였다. 무진일, 장총우가 연진과 봉구로 달아났으나 유송산과 곽보창이 이를 격파하였다. 신미일, 심계분을 군기대신으로 삼았다. 을해일, 주봉표를 대학사로 삼았다. 병자일, 서쪽의 회적이 이문을 함락하였다. 정축일, 장총우가 활현으로 달아났으나 격파되었다. 이달에 직예 안주 등 여러 지역의 침수지에서 밀린 세금을 면제하였다.여름 사월 기묘삭, 하밀의 회적이 오보를 함락하였으나 관군이 이를 격퇴하였다. 갑신일, 장총우가 남피를 함락하였다. 정해일, 좌종당·이홍장·정부정 등에게 운하 동서 양쪽으로 군대를 나누어 방어와 토벌을 하도록 명하였다. 기축일, 묘적 하정관이 항복하였다. 경인일, 섬서의 군대가 빈주에서 회적을 토벌하다 패하여 담옥룡이 전사하였다. 기사일, 영정하가 터졌다. 을미일, 도흥아를 서울로 불러들였다. 무술일, 여평의 묘적이 황주와 원주의 여러 지역을 침범하였으나 관군이 이를 격퇴하였다. 신축일, 영조량의 회적이 오르도스 유목민을 침범하였으나 패자 찰나격이지가 이를 격퇴하였다. 회적이 하밀을 침범하였으나 이륵둔 등이 함께 격퇴하였다. 계묘일, 홍균 등 이백칠십 명에게 차등 있게 진사 급제와 출신을 내렸다. 이달에 사천의 각 토사의 삼 년 치 조세를 면제하였다.​윤사월 무신삭, 서쪽의 회적이 곤양·신흥·진녕·정공·숭명을 차례로 함락하였다. 무오일, 회적이 다시 신목을 함락하였다. 계해일, 섬서의 군대가 연장을 다시 수복하였다. 갑자일, 동복상이 귀순하자 공을 세워 죄를 씻게 하도록 명하였다. 을축일, 회적이 오신기에 주둔하며 준갈르기를 나누어 교란하고 탁극탁성을 압박하였다. 정묘일, 정문병·진국서·유송산 등의 군대가 고당·치평·박평에서 장총우를 공격하여 크게 승리하였다. 적은 동광으로 달아났다. 기사일, 회적이 다시 경양과 영주·합수를 함락하였고, 지현 양병화가 전사하였다. 신미일, 도흥아를 흠차대신으로 삼아 좌종당·이홍장과 함께 염적을 토벌하게 하고, 춘희·진국서·장요·송경의 네 군대를 조정하게 하였으며, 숭후에게 군무를 돕게 하였다.오월 무인일, 유송산 등의 군대가 염산과 해풍에서 장총우를 토벌하여 크게 승리하였다. 기묘일, 장강수사를 새로 설치하고 악주·한양·호구·과주의 네 진에 총병관을 두었다. 계미일, 섬서의 군대가 빈주와 봉상으로 달아난 회적을 격퇴하였다. 임진일, 북산의 토적이 연안을 침범하였으나 관군이 패하여 부장 유문화 등이 전사하였다. 경자일, 운남의 군대가 원모·무정·녹권·나차를 다시 수복하였다. 이달에 호남 황주의 난으로 밀린 세금을 면제하였다.유월 기미일, 곽송림 등이 임읍·빈주·양신에서 염적을 토벌하여 크게 승리하였다. 수사에게 운하 방어를 엄중히 하도록 명하였다. 신유일, 계군이 귀순을 다시 수복하였다. 계해일, 금적이 영고탑 경계로 달아났으나 관군이 토벌하여 평정하였다. 갑자일, 섬서의 군대가 의천을 점령하였다. 병인일, 장총우가 운하 강변을 침범하였으나 관군이 이를 격파하였고 염적이 많이 항복하였다. 무진일, 다시 상하에서 공격하여 크게 승리하였다. 을해일, 이운린의 직을 박탈하고 조사하게 하였다. 명요를 부륜토해 판사대신으로 삼았다. 절강의 해안 제방 공사가 완공되었다.가을 칠월 정축일, 직예·산동·하남의 난을 입은 여러 주현의 토지세를 면제하였다. 기묘일, 춘수가 속임수와 은폐를 이유로 면직되었다. 임오일, 창주 등 여러 곳의 난민을 구휼하였다. 을유일, 장총우가 물에 빠져 죽어 염적이 평정되었다. 이홍장과 좌종당에게 태자태보의 칭호를 더하고, 이홍장은 호광총독으로서 협판대학사를 겸하게 하였으며, 정부정·영한·숭후에게도 태자소보의 칭호를 더하였다. 관문의 관직과 공작 깃을 회복시켰고, 유명전을 일등남으로, 곽송림을 일등 경거도위로 승진시켰으며, 송경과 선경에게는 이등 경거도위를 내리고, 유송산에게 황마괘와 삼등 경거도위를 내렸으며, 곽보창·장요·온덕륵극서에게 기도위를, 황익승에게 운기위를 더하였다. 진국서의 제독 세직을 회복시키고 나머지도 차등 있게 승진시켰다. 돈친왕에게 정릉에 제사를 올리게 하였다. 팽옥린이 고향으로 돌아가 삼년상을 마치는 것을 허락하였다. 병술일, 좌종당과 이홍장을 불러 입조하게 하였다. 정해일, 형택의 하천 제방이 터졌다. 신묘일, 모창희가 군무가 점차 평정되었으니 더욱 삼가고 두려워해야 한다고 아뢰었고, 이어 어사 장서해도 태평을 지키고 때맞추어 학문을 강론해야 한다고 상소하였으며, 모두 받아들였다. 임진일, 좌종당의 청을 허락하여 항복한 무리를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계사일, 무척의 심하 제방이 터졌다. 을미일, 증국번을 직예총독으로 옮기고, 마신이를 양강총독으로, 영계를 민절총독으로 삼았다. 팽옥린에게 강소와 안휘로 가서 장강수사의 일을 함께 계획하게 하였다. 무술일, 강소·안휘·하남·산동의 각 고을에 둑과 보루를 수리하고 향단을 정비하도록 명하였다. 경자일, 송나라 유학자 원섭을 문묘 종사에 배향하였다. 귀주를 지원한 사천군이 용리와 귀정을 다시 수복하였다. 사천군이 월수의 이적을 토벌하여 승리하고 그 우두머리 늑오립을 사로잡았다. 증벽광을 귀주순무로 임명하였다. 신축일, 부륜토해의 변민이 오롱고하로 달아났다. 덕륵극다이지가 죽었다. 계묘일, 형택과 정주의 재해 백성을 구휼하였다. 감숙의 회적이 백수와 합양을 교란하였으나 섬서의 군대가 이를 격퇴하였다. 갑진일, 귀주를 지원한 호남군이 옹안을 다시 수복하였다.​팔월 을사삭, 어사 덕태의 직을 박탈하였는데, 원림과 정원을 수리할 것을 상주하였기 때문이다. 창고지기 귀상이 헛되이 이익을 바라는 계책을 아뢰어 흑룡강으로 보내 노비로 삼았다. 영정하가 다시 터졌다. 기유일, 명요 등에게 부륜토해의 옛 제도를 회복하도록 명하였다. 마신이에게 통상사무대신을 겸하게 하였다. 임자일, 연안의 토적 호창이 항복하였다. 계해일, 좌종당에게 산서의 군무도 함께 돌보도록 명하였다. 무진일, 길림에서 개간지와 황무지의 경계를 엄격히 정하도록 명하였다. 신미일, 김순에게 섬서를 지원하는 군무를 전담하게 하였다. 이달에 안휘·강소·산동·하남·호북의 난으로 여러 해 밀린 세금을 면제하였다.구월 임오일, 관군이 경양을 다시 수복하였다. 갑신일, 숙주의 회적이 돈황을 공격하였으나 관군이 이를 격퇴하였다. 이륵둔 등에게 파리곤의 둔전을 계획하게 하였다. 을유일, 귀주를 지원한 사천군이 평월을 함께 다시 수복하였다. 신묘일, 연후를 관문 밖으로 보내 봉천의 국경 확장 문제를 조사하게 하였다. 계사일, 운남의 군대가 진녕과 정공을 다시 수복하였다. 이달에 절강 횡포 등 여러 염장의 흉년으로 인한 염세를 면제하였다.겨울 시월 정미일, 회적이 경주와 영대를 침범하였으나 격퇴하였다. 을묘일, 문린이 하밀에 도착하자 채파십호 등 여러 곳에 둔전을 설치하도록 명하였다. 병진일, 목도선이 하주를 함락하였다. 제남과 무정의 수재민을 구휼하였다. 정사일, 이운린을 흑룡강으로 유배 보냈다. 무오일, 이홍조에게 계속 홍덕전과 군기처의 직무를 맡게 하였다. 경신일, 코브도를 지킨 공으로 토르후트 군왕 능찰동로포에게 친왕의 칭호를 더하였다. 기사일, 귀주의 묘적이 다시 흥의를 함락하였으나 곧 다시 수복하였다.십일월 갑술일, 귀주를 지원한 사천군이 마하를 다시 수복하였다. 정해일, 양주 총병 주성파가 부하를 단속하지 못한 죄로 면직되었다. 회적이 오르도스 등의 기를 교란하고 유림으로 달아났다. 정안 등에게 이를 차단하여 토벌하도록 명하였다. 임진일, 관리와 서리의 오래된 폐단을 없애도록 명하였다. 기해일, 귀주의 군대가 도균을 함락하자 장문덕에게 황마괘를 하사하였다. 경자일, 대만의 영국 영사가 서양 군인을 방임하여 선박을 약탈하게 하고 영영을 점거하며 관청과 창고를 불태우고 군비를 강요하였다. 총리아문에 엄히 조사하게 하고 영계 등에게 적임자를 뽑아 교섭하게 하였다. 임인일, 열하의 도적을 평정하였다. 길림 쌍성보의 수재를 입은 둔전의 조세를 면제하였다.십이월 갑진삭, 사천군이 서창의 이적을 토벌하여 연이어 승리하자 여러 이족 부족이 항복하였다. 귀주를 지원한 호남군이 천주를 다시 수복하였다. 병오일, 회적이 포두를 침범하여 몽골 군대가 패하였다. 정미일, 열하의 도적 우두머리 미륵승격을 처형하였다. 갑인일, 증국번이 사천의 사염이 초 지역에 해를 끼친다고 아뢰자 사천 소금을 초 지역에 보내는 제도를 정지하도록 계획하게 하고 관청을 폐지하며 세금을 중지하도록 명하였다. 정사일, 운남의 군대가 징강을 다시 수복하였다. 경신일, 각 성에 다시 아편 재배를 금하도록 명하였다. 임술일, 귀주의 묘적이 하지를 침범하였으나 관군이 이를 격퇴하였다. 을축일, 조정의 재심에서 세 번 이상 사형을 연기한 자는 모두 한 등급 감형하도록 명하였다. 영정하 공사가 완성되었다. 무진일, 기경을 면직시키고 경춘을 열하도통으로 삼았다. 경오일, 유송산이 대리천에서 적을 토벌하여 크게 승리하였다. 임신일, 호북의 군량 이십일만 냥을 돌려 하남의 재해 구휼에 사용하였다. 이달에 강소의 황무지 세금을 면제하고, 산동 태안과 하남 여녕 등 여러 고을의 난으로 밀린 곡식 세금을 면제하였다.이해에 조선이 조공하였다.​팔년 기사년 봄 정월 계유삭, 연회를 중지하였다. 정축일, 사천·호남·귀주·광서의 여러 군대가 함께 묘적을 토벌하여 귀주의 군대가 장채를 다시 수복하였다. 무인일, 운남의 군대가 부민을 점령하였다. 기축일, 유송산 등의 군대가 토적과 회적을 공격하여 청간에서 격파하였다. 성록이 숙주를 점령하였고, 양점오와 함께 황마괘를 하사받았다. 갑오일, 형택의 제방 공사가 완성되었다. 병신일, 유송산의 군대가 정변에서 적을 격파하였고, 동시유 등이 진정보와 정변을 들어 항복하였다. 서쪽의 회적이 곤명을 침범하였으나 잠육영 등이 이를 격퇴하였다. 신축일, 뇌정환이 경주의 동가보를 점령하였다.이월 무신일, 원보항에게 서정 군량과 하남 빙상장 군수품을 총괄하게 하였다.삼월 계유삭, 임자청이 흥의 지현을 살해하였으나 제독 진희상이 유인하여 처형하였고, 진희상에게 황마괘를 하사하였다. 갑술일, 귀주를 지원한 호남군이 진원부와 위성 두 성을 다시 수복하였다. 기묘일, 감숙 제독 고연승의 부대에서 병사들이 반란을 일으켜 고연승을 살해하자, 부장 주소렴이 동관에서 반란군을 공격하여 모두 섬멸하였다. 을유일, 총독과 순무에게 수복한 주현에서는 목령을 신중히 선발하고 떠돌아다니는 백성을 잘 돌보도록 명하였다. 경인일, 회적이 등구를 함락하였다. 갑오일, 토로번의 회적이 하밀을 침범하였으나 관군이 거듭 격파하였다. 을미일, 계군이 빙상을 점령하였다. 기해일, 황태후의 명으로 황제의 혼례는 힘써 검소하게 치르도록 하였다.이 봄, 강소 산양과 직예 안주 등 여러 고을의 재해와 난리로 인한 세금을 면제하고, 양회 부안 등 여러 염장의 밀린 염세를 면제하였다.여름 사월 계묘삭, 서쪽의 회적이 양림영을 함락하자 유악소가 곡정으로 물러나 지켰고, 이에 대해 엄하게 문책하였다. 을사일, 인흥이 일을 두려워한 죄로 면직되었다. 복제를 오리야소태 장군으로, 문석을 부륜토해 판사대신으로 삼았다. 기유일, 뇌정환과 황정의 군대가 진원과 경양을 다시 수복하였다. 귀주를 지원한 사천군이 옹안을 다시 수복하였다. 기미일, 귀주를 지원한 호남군이 청강을 함께 다시 수복하였다. 경신일, 유명전의 병가 청원을 허락하였다. 신유일, 진식의 유배를 면제하였다. 이달에 산동 동창 등 여러 고을의 밀린 세금을 면제하였다.오월 경진일, 귀주를 지원한 호남군이 시병을 다시 수복한 뒤 황표의 적진을 공격하였으나 패하여 안찰사 황윤창, 도원 등자원, 제독 유장괴가 전사하였다. 임오일, 회적이 징강을 함락하였다. 갑신일, 두가이 등의 군대가 항금기에서 적을 크게 격파하였다. 신묘일, 이홍장에게 사천으로 가서 오당 탄핵 사건을 조사하게 하였다. 잠육영이 적과 내통한 연목을 등용하고 백성에게 가혹하게 세금을 거둔 일을 엄히 꾸짖었다. 마여룡을 운남제독으로 삼았다. 병신일, 관군이 보안에서 도적을 토벌하여 크게 승리하고, 도적 우두머리 원대괴 등을 처형하였다. 봄 정월부터 비가 오지 않아 황제가 거듭 기우제를 올렸으며, 정유일에 비가 내렸다.유월 신해일, 지원군이 함께 심전을 점령하였다. 임자일, 동순과 숭후에게 오스만과의 조약 교환을 맡게 하였다. 갑인일, 영정하가 다시 터졌다. 무오일, 황표 토벌에서 전사한 제독 영유선과 총병 나지굉 등에게 세직을 한 등급 더하여 추증하였다. 신유일, 무영전에 화재가 났다. 계해일, 왜인·서동·옹동화가 황제에게 성덕을 더욱 힘써 닦아 재앙을 막아야 한다고 아뢰자 황제가 이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병인일, 총독과 순무에게 농업과 양잠을 장려하고 살피도록 명하였다. 경오일, 회적이 아라선의 정원영을 침범하였으나 몽골 군대가 패하였다.​가을 칠월 신미삭, 일식이 있었다. 계유일, 장요 등의 군대가 찰한뇨이에서 회적을 격파하였다. 오곤수에게 장강 연안 각 고을로 가서 재해 백성을 구휼하게 하였다. 갑술일, 운남의 군대가 숭명을 다시 수복하고 백염정을 점령하였다. 갑신일, 계군이 베트남 군대와 함께 구봉·낙양 등의 요새를 점령하였다. 을유일, 석륜에게 액로트 사람들을 구휼하도록 명하였다. 병술일, 조선이 압록강 북쪽에 유민이 집을 짓고 밭을 개간하는 것을 금해 달라고 청하자 도흥아 등에게 적절히 처리하도록 재촉하였다. 임진일, 하관의 군대가 목루하 등지에서 적을 격파하였다. 이달에 황주의 난으로 밀린 세금을 면제하였다.팔월 경자삭, 러시아 상선이 호란하 어귀에 정박하여 길림과 흑룡강 내지에서의 통상을 요구하자 총리아문에 조약에 따라 이를 막고 군민이 사사로이 교역하지 못하게 하도록 명하였다. 계묘일, 내시 안득해가 서울을 떠나자 정부정이 상주하여 처형하였다. 귀주의 도적이 다시 도균을 함락하였다. 병오일, 계군이 함께 베트남의 고평을 다시 수복하였다. 경술일, 다시 환관을 엄히 단속하도록 명하였다. 임자일, 관군이 항금기 일대로 달아난 회적을 토벌하여 평정하였다. 계축일, 영하의 관군이 적을 토벌하다 패하여 부장 방대순이 전사하였다. 무오일, 곤가찰랍참의 군대가 부륜토해를 다시 수복하고 도적 우두머리 장국 등을 처형하였다. 기미일, 관군이 달랄트기로 달아난 도적을 토벌하여 섬멸하였다. 이달에 절강 항주·호주 여러 고을과 호남 안향 등 현의 수재민을 구휼하였다.구월 경오일, 고대의 용병이 붕괴하자 성록의 직을 박탈하였으나 그대로 유임시켰다. 임신일, 서울의 군량 삼십만 냥을 무창·한양 등지의 공사와 구휼에 배정하였다. 갑술일, 마화룡이 다시 반란을 일으켜 영주를 기습하여 함락하였다. 관군이 위융보와 수락성을 다시 수복하였다. 무인일, 운남의 군대가 이문을 다시 수복하였다. 임오일, 시암의 지난 여러 해 조공품 보충을 면제하였다. 경인일, 우루무치의 도적이 하밀로 달아났으나 하관 등이 이를 격파하였다. 을미일, 복건에서 새로 만든 첫 번째 증기선이 완성되자 숭후에게 검사하게 하였다. 무술일, 복제 등에게 액로트 사람들이 모두 옛 거주지에 살게 하고 승려들은 알타이산 남쪽에, 일반 백성은 청거리하에 살게 하도록 명하였다.겨울 시월 경자일, 유송산이 오충보 등지에서 회적을 격파하였다. 신축일, 김순이 다시 납가방에서 회적을 격파하였다. 양점오를 감숙제독 서리로 삼아 숙주의 사후 정리 업무를 맡게 하였다. 프랑스 사신 라숙아가 수사 제독과 함께 군함을 이끌고 강서·호북·사천의 교안 사건을 조사하러 가자 현지에서 조약에 따라 접대하도록 명하였다. 을사일, 뇌정환과 황정이 고원과 염차에서 회적을 격파하였다. 정미일, 모창희와 심계분에게 총리아문에서 근무하게 하였다. 신축일, 문석 등에게 부륜토해의 경계 문제를 공동 조사하게 하고, 동순에게 미국과의 조약 교환을 맡게 하였다. 갑인일, 운남의 군대가 초웅·남안·정원을 다시 수복하였다. 유악소가 군대를 곤명으로 옮겼다. 기미일, 하밀의 관군이 서로의 회적을 토벌하여 크게 승리하였다. 갑자일, 봉황성의 도적 우두머리 왕경 등을 처형하였다. 을축일, 유송산의 군대가 영주를 다시 수복하였다. 이달에 운남의 수재민과 직예의 가뭄 피해 백성을 구휼하였다.​십일월 병자일, 치평의 교도 반란 무리 손상문 등이 반역을 꾀하자 붙잡아 처형하였다. 정축일, 새로 설치한 부륜토해 판사대신을 폐지하였다. 경진일, 강녕의 수재민을 구휼하였다. 계미일, 코브도에 속한 담비 공물을 면제하였다. 갑신일, 운남의 군대가 곤양을 다시 수복하였다. 병술일, 감숙의 군대가 정원을 다시 수복하였다. 경인일, 영정하 하구의 제방 공사가 완성되었다. 을미일, 문석을 서울로 불러들이고 규창에게 경계 업무를 맡게 하였다. 이달에 직예 동명의 침수 및 난리 피해와 안휘 무위 등 여러 주현과 위소의 수재로 밀린 세금을 면제하였다.십이월 경자일, 운남을 지원한 사천군이 노전을 점령하였다. 을사일, 유송산의 군대가 금적보를 공격하다 총병 간경림 등이 전사하였다. 을묘일, 필릉이 철맹웅의 여러 지역을 침범하여 점령하고, 곽이객과 당고특이 서로 불화를 일으키자 은린에게 방어를 유지하며 잘 타이르도록 명하였다. 부루크파에서도 내분이 일어나자 역시 은린에게 잘 설명하고 회유하여 안정시키도록 명하였다. 정사일, 베트남의 도적을 평정하였다. 소봉문에게 국경 금령을 엄히 시행하도록 명하였다. 계해일, 경기 남부의 재해 백성을 구휼하였다.이해에 조선·베트남·유구가 조공하였다.구년 경오년 봄 정월 정묘삭, 연회를 중지하였다. 계유일, 운남의 군대가 녹풍을 다시 수복하였다. 갑술일, 감숙의 군대가 왕가맹에서 적의 지원군을 격파하였다. 기묘일, 회적이 정변을 함락하였다. 계미일, 신무문의 목재 창고에 불이 나자 황제가 스스로를 반성하는 조서를 내렸다. 경인일, 회적이 안정을 함락하였다. 섬서의 군대가 정변을 다시 수복하였다. 갑오일, 마덕소에게 동관의 방어를 계속 맡게 하였다.이월 신축일, 유송산이 금적보의 회적을 토벌하던 중 포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도원 유금당에게 삼품 경함을 내리고 그의 군대를 이어 지휘하게 하였다. 러시아 관리가 치치하얼과 길림으로 와서 국경 문제를 의논하자 부명아와 덕영에게 조약에 따라 상대하되 함부로 양보하지 말도록 명하였다. 을사일, 회적이 안변과 청간으로 나누어 달아났으나 섬서의 군대가 이를 격퇴하였다. 병오일, 다시 화마지와 유림으로 나누어 달아나자 송경의 군대가 이를 토벌하였다. 무신일, 관군이 미지로 달아난 도적을 격파하였다. 임자일, 이홍장에게 섬서로 가서 군무를 총괄하게 하였다. 갑인일, 회적이 동관과 의군으로 달아났으나 섬서의 군대가 이를 격파하였다. 병진일, 프랑스 사신이 교안 사건을 구실로 군대를 동원해 위협하자 각지의 지방관과 통상대신에게 신속히 교섭을 마무리하도록 명하였다. 신유일, 영하의 여러 성에서 항복했던 회족이 다시 반란을 일으켰다.삼월 정묘삭, 회적이 준갈르기로 달아났으나 마옥곤이 이를 격파하였다. 신사일, 뇌정환이 협곡 방어를 소홀히 한 죄로 면직되었으나 군영에는 남겨 두었다. 서정을 맡은 각 군대에게 공을 탐하여 성급히 진격하지 말도록 경계하였다. 을유일, 운남의 군대가 미도·빈천·여천·면녕을 다시 수복하였다. 신묘일, 회적이 기주와 봉상 일대를 나누어 교란하였으나 이휘무가 이를 격파하였다.여름 사월 갑진일, 담정양이 죽었다.오월 경오일, 숭실을 귀주로 보내 증벽광과 함께 교안 사건을 조사하게 하였다. 계유일, 처음으로 영국이 연해 각 항구에 전신선을 설치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갑술일, 귀주를 지원한 사천군이 황표·백보 등의 묘족 산채를 점령하였다. 경인일, 천진에서 주민과 천주교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 성당을 불태우고 프랑스 영사를 구타하여 죽였다. 증국번과 숭후에게 함께 의논하여 처리하게 하였다. 을미일, 변경의 지방관들에게 유언비어를 퍼뜨려 민심을 어지럽히는 일을 엄금하고 통상과 선교 지역을 보호하도록 명하였다. 이홍장이 군대를 거느리고 관문 안으로 들어와 곽보창의 군대를 옮겨 달라고 청하자 허락하였다. 숭후를 프랑스 주재 사신으로 임명하였다. 성림을 삼구 통상대신 서리로 삼았다. 이달에 직예 안주 등 여러 고을의 밀린 세금을 면제하였다.​유월 무술일, 규창을 탑이합대로 보내 러시아 사신과 함께 국경을 측량하고 경계를 정하게 하였다. 임인일, 새음노안부의 몽골 군대가 회적을 토벌하다 패하였다. 정미일, 운남의 군대가 위원을 다시 수복하였다. 기유일, 팽옥린에게 강남으로 가서 장강 연안의 총독·순무와 함께 장강 수군을 정비하게 하였다. 경술일, 감숙의 군대가 공창에서 회적을 격파하였다. 을묘일, 영정하가 다시 터졌다. 경신일, 백성과 천주교의 충돌을 막지 못한 죄로 천진부 지부 장광조와 지현 유걸의 직을 박탈하고 형부에 내려 죄를 다스리게 하였다. 신유일, 운남의 군대가 요주를 다시 수복하였다. 계해일, 모창희에게 증국번과 함께 교안 사건을 조사하게 하였다. 증국번이 화친의 국면을 온전히 지키는 것이 백성을 보호하는 길이며, 뜻밖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이 나라를 세우는 근본입니다.라고 아뢰자 황제가 칭찬하고 격려하였다. 정일창에게 천진으로 가서 양무를 보좌하게 하였다.가을 칠월 무진일, 훈춘의 변경 업무가 번잡하므로 협령에게 부도통의 칭호를 더하는 것을 정례로 삼았다. 병자일, 프랑스 사신 라숙아가 증국번이 부·현 관리의 처벌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자 서울로 돌아왔다. 증국번에게 원흉을 신속히 체포하여 사건을 빨리 마무리하라고 명하였다. 정축일, 숭후를 소환하였다. 모창희를 삼구 통상대신 서리로 임명하였다. 갑신일, 주성전 등이 북산의 남은 도적을 토벌하여 흩어 버렸다. 병술일, 다음과 같이 조칙을 내렸다. 해상의 수군은 강의 수군과 전혀 다르다. 외적을 막고 자강을 이루려면 이십 년은 힘써야 하남 빙상장 비로소 성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러나 일이 어렵다고 물러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영원히 자강할 날이 없다. 근래 대신들은 일이 급하면 허둥대기만 하고, 화가 조금 가라앉으면 다시 안일함만 꾀하였다. 전투와 방어의 제도를 만들어도 제대로 시행하지 않아 조정의 논의가 모두 형식에 그쳤다. 이러한 폐습 때문에 근심이 그치지 않는다. 이제 복건과 상해의 두 조선소에서 증기선이 완성되었으니, 마신이·정일창·영계·심보정을 각각 바다로 나가게 하여 오랫동안 훈련해 뜻밖의 사태에 대비하도록 하라. 광동도 증기선을 준비해야 하니 서린과 이복태는 성실히 추진하라. 바다 사정에 익숙한 장수는 수시로 천거하고, 산골에 있더라도 해전에 능한 자가 있으면 재능에 따라 발탁하라. 각 총독과 순무는 전체를 두루 헤아려 맡은 책임을 다하라.&quot경인일, 남로의 감숙 군대가 위원과 적도를 다시 수복하였다. 이달에 황주의 난으로 밀린 세금을 면제하였다.팔월 정유일, 여양 사람 장문상이 마신이를 암살하였다. 증국번을 양강총독으로, 이홍장을 직예총독으로 옮기고, 이한장을 호광총독으로 삼았다. 무술일, 황하 수군을 설치하였다. 경자일, 북산의 도적 우두머리 이범각을 처형하였다. 임인일, 장지만에게 규옥과 함께 장문상을 심문하게 하였다. 기유일, 모창희를 소환하였다. 이홍장에게 증국번과 함께 천진 교안 사건을 조사하게 하였다. 계축일, 계군이 안변과 하양의 도적을 토벌하여 평정하고 양첨석을 처형하였다. 베트남이 특산물과 길들인 코끼리를 바치는 것을 허락하였다. 기미일, 이성모를 새로 설치한 증기선 통령으로 임명하였다.구월 무진일, 운남의 군대가 신흥을 다시 수복하였다. 경오일, 숭실에게 다시 준의로 가서 교안 사건을 처리하게 하였다. 갑술일, 천진에서 백성과 천주교의 충돌 사건 관련자를 처벌하여 장광조와 유걸은 유배 보내고, 흉악한 살인을 저지른 범인 열다섯 명을 처형하였다.이 가을에 사천 동부·형주·열하에 홍수가 나자 백성을 구휼하였다.​겨울 시월 을미일, 심보정이 부모상을 당하자 백 일이 지난 뒤에도 계속 선정을 관리하도록 명하였다. 병신일, 유금당에게 섬서의 군무를 총괄하게 하였다. 사천의 주현에서 가혹하게 세금을 거두는 일을 엄금하도록 명하였다. 북산 난민 구휼을 위해 비용을 지급하였다. 신축일, 강북의 조운선이 얕은 곳에 막히므로 육로를 통해 임청으로 운송하게 하였다. 갑진일, 천진 제조국이 완성되었다. 경술일, 일본이 조약을 맺고 통상할 것을 요청하자 총리아문에서 인원을 뽑아 조약을 논의하게 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신해일, 코브도의 담비 공물을 면제하였다. 임자일, 삼구 통상대신을 폐지하고 직예총독에게 남양대신의 예와 같이 업무를 맡게 하며 흠차대신의 관인을 주었다. 변경의 관리들에게 교섭을 신중하고 비밀스럽게 하도록 엄히 명하고, 누설하는 자는 즉시 처형하도록 하였다. 병진일, 홍수와 가뭄이 거듭 발생하자 반성하고 수양하라는 조서를 내렸다. 무오일, 주성전의 군대를 경기 지역 방위로 옮겼다. 섬서 회족 우생언 등이 평번으로 달아났으나 관군이 패하여 제독 장만미 등이 전사하였다. 경신일, 직예 진해관도를 설치하였다. 유금당의 여러 군대가 한백 등의 보루를 점령하고 금적보를 포위하였다.윤시월 을축일, 러시아 사신 왜량가리가 서울에 왔다. 경오일, 상담의 회당 반란 무리를 평정하였다. 을해일, 운남의 군대가 영북·학경·진남·초웅을 다시 수복하였다. 회적이 오리야소태를 함락하였다. 병자일, 영정하 제방 공사가 완성되었다. 증국번에게 하운 문제를 계획하게 하였다. 무인일, 베트남의 오아종 등을 처형하였다.십일월 계사일, 정돈근에게 장문상 사건을 함께 심문하게 하였다. 곧 판결을 확정하고 강녕에서 장문상을 능지처참하였다. 정유일, 회적이 양주로 달아나 부장 사원흥이 전사하였으나 왕인화가 이를 격퇴하였다. 신축일, 귀주를 지원한 호남군이 대공을 다시 수복하였다. 무신일, 복제와 영전이 도적이 오리야소태에 들어온 책임으로 면직되었으나 유임되었다. 증국번에게 통상대신을 겸하게 하였다. 경술일, 감숙 총병 주동흥이 구휼 물자를 빼돌린 죄로 군 앞에서 참형하도록 명하였다. 경신일, 유곤일이 비밀 조칙을 누설한 죄로 면직되었으나 유임되었다.십이월 갑자일, 하천 공사에서 몰래 비용을 줄이고 횡령하는 여러 폐단을 엄금하도록 명하였다. 신미일, 운남의 군대가 등천과 낭궁을 다시 수복하였다. 회적 우두머리 마원발이 제독 정현발 등을 살해하였으나 붙잡아 처형하였다.이 겨울에 귀주 흥의 등 주현과 섬서 수덕 등 주현의 재해와 난리로 밀린 세금을 면제하였다.이해에 조선이 조공하였다.십년 신미년 봄 정월 신묘삭, 연회를 중지하였다. 임진일, 관군이 하서 왕맹의 도적 진지를 점령하였고, 김순에게 황마괘를 내리고 장요에게 운기위를 더하였다. 을미일, 귀주의 군대가 귀정 등지의 도적 진지를 평정하고 도균을 점령하였으며, 제독 임종태와 총병 하웅휘에게 황마괘를 하사하였다. 기해일, 풍자재에게 태평으로 가서 목마와 량산의 도적을 토벌하게 하였다. 임인일, 관문이 죽었다. 이달에 직예 안주 등 여러 고을의 수재로 인한 세금을 면제하였다.​이월 임술일, 유금당 등의 군대가 금적보를 점령하고 도적 우두머리 마화룡 등이 처형되었다. 좌종당에게 기도위를 더하고, 유금당에게 운기위와 황마괘를 하사하였으며, 뇌정환의 처분을 풀어주고 진식의 원래 관직을 회복시켰다. 황정과 김운창에게 황마괘를 하사하였다. 귀순한 섬서 회족을 화정의 화평천에 배치하고, 통판과 도사를 설치하여 안정시키게 하였다. 이전 영주 지현 팽경장은 도적의 주모자로 몰려 참형에 처해졌다. 임오일, 반란 장수 송경시를 붙잡아 처형하였다. 정해일, 강소 안찰사 응보시를 천진으로 보내 일본과의 통상 문제를 준비하게 하였다. 서상을 대학사로 삼고, 문상을 협판대학사로 삼았다.삼월 계사일, 김순 등의 군대가 영하를 점령하고 도적 우두머리 마만선이 처형되었다. 기축일, 운남의 군대가 징강을 다시 수복하고 강나 토성을 점령하였으며, 도적 우두머리 마화 등이 처형되었다. 신축일, 프로이센 사신 이복사가 국서를 바쳤는데, 독일 여러 나라와 자주적인 세 도시가 함께 통일을 이루어 존칭을 받아 독일 황제가 되었다고 알렸다. 이에 답서를 보내 축하하였다. 정미일, 왜인을 문화전대학사로 삼고, 서상을 문연각대학사로 삼았다. 봄 초부터 이달까지 황제가 계속 기우제를 올렸고, 경술일에 비가 내렸다.여름 사월 병인일, 귀주를 지원한 호남군이 신성·암문사 등의 성을 다시 수복하고 고파 등의 묘족 산채를 점령하였다. 기사일, 영하 납가방의 회족 무리가 항복하였다. 기묘일, 섬서 회적이 평번과 연백을 침범하였으나 관군이 격퇴하였다. 신사일, 왜인이 죽었다. 갑신일, 양요추 등 삼백이십삼 명에게 차등 있게 진사 급제 출신을 하사하였다. 대고와 북당에 포대를 쌓았다. 을유일, 복제를 면직하고 김순을 오리야소태 장군으로 삼았다. 병술일, 회적이 다시 새음노안부를 침범하여 소란을 일으키고 고이반새한 등지를 불태우고 약탈하였다.오월 경인삭, 비가 내렸다. 을미일, 좌종당이 회족의 새로운 종교를 금지할 것을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무술일, 묘족 우두머리 문국흥 등이 항복하고 팔채 등의 성이 모두 회복되었다. 임인일, 회적이 오랍특을 침범하자 두가이와 살살포의 군대가 함께 공격하였다. 병오일, 귀주를 지원한 호남군이 단강·개리 등의 성을 다시 수복하고 소원춘에게 황마괘를 하사하였다. 기유일, 이세충이 원한으로 싸움을 벌이고 진국서가 연극을 벌여 소란을 일으킨 죄로 이세충의 직을 박탈하고, 진국서는 도사로 강등하였으며, 모두 고향으로 돌려보내 관청에서 관리하게 하였다. 신해일, 정친왕 승지가 죄를 지어 작위를 박탈하고 체포하여 심문하게 하였다. 이홍장에게 일본과의 통상 조약을 처리하게 하고, 응보시와 진흠을 보좌관으로 삼았다. 을묘일, 김순이 휴가를 청하여 상을 치르고 부모를 장사지내려 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기미일, 운남의 군대가 운룡을 다시 수복하였다.​유월 임술일, 태백성이 낮에 나타났다. 익양 등지의 회당 반란 무리를 평정하였다. 기사일, 섬서 회족 백언호가 서녕의 회족 무리와 결탁하여 하주를 교란하였다. 경오일, 귀주의 군대가 영녕·진녕·귀화의 묘족 산채를 점령하고 낭대·수성의 여러 동채를 격파하였다. 을해일, 서린을 대학사로 삼고 계속 양광총독 직을 맡게 하였다. 기묘일, 부양의 도적이 심구와 여양을 교란하자 관군이 붙잡아 처형하였다. 신사일, 광동에서 도적이 횡행하므로 엄히 체포하도록 명하였다. 정해일, 덕종이 순친왕부에서 태어났다. 무자일, 천진의 재해 백성을 구휼하였다.가을 칠월 기축삭, 계군이 베트남에서 달아난 도적을 토벌하여 장경을 점령하고 도적 우두머리 조웅재를 참하였다. 임진일, 두가이의 군대가 포랄특에서 도적을 토벌하여 승리하였다. 갑오일, 영정하가 다시 터졌다. 병신일, 목도선이 북산으로 가서 도적을 토벌하였다. 김운창의 군대가 오랍특에서 달아난 도적을 토벌하여 승리하였다. 정미일, 하내 심하가 터졌다. 을묘일, 창도 도적들이 달아나며 소란을 일으켰으나 도흥아가 군대를 보내 평정하였다.팔월 임신일, 부도통 경지가 정친왕의 작위를 세습하게 하였다. 갑술일, 계군이 안세의 도적 산채를 점령하고 태원으로 달아난 도적을 추격하여 토벌하였다. 소국한이 광동으로 가서 항복을 청하였다. 정축일, 각 성에 기관을 설치하여 떠돌아다니는 고아와 홀몸 노인을 거두어 기르게 하라는 조서를 내렸다.구월 병신일, 고우에서 곡식을 징수할 때의 폐단을 없앴다. 정유일, 감숙의 군대가 강가애의 요충지를 점령하였다. 영전에게 이리로 가도록 재촉하였다. 유금당에게 석 달의 휴가를 주었다. 임인일, 봉천과 길림의 관리 행정을 정비하고 도적을 엄히 체포하도록 명하였다. 은석을 상해로 보내 오스트리아와의 조약 교환을 처리하게 하였다. 정미일, 교송년 등이 후가림의 터진 제방을 함께 막았다.이 가을에 순직 각 고을과 하택 등 주현의 재해를 구휼하고, 복주가 물 피해를 입은 것과 황주가 난리를 입은 것으로 밀린 세금을 면제하였다.겨울 시월 무오삭, 달르지가 군영을 철수하여 도적을 풀어준 죄로 직을 박탈하고 체포하여 다스리게 하였다. 조극충에게 유금당의 군대를 이어받아 숙주로 가서 방어와 토벌을 맡게 하였다. 경신일, 호남의 도적 변란 때문에 이홍장에게 조사하게 하였다. 임진일, 경렴을 우루무치 도통으로 임명하였다. 계미일, 이리에서 협박을 받은 관리와 군민 등의 죄를 면제한다는 조서를 내렸다. 참령 공과르에게 달르지의 군대를 이어 지휘하게 하였다.십일월 계사일, 감숙의 군대가 하주를 점령하고 우득언 등이 항복하였다. 정미일, 서녕 회적이 오랍특과 중위로 달아났으나 장요의 군대가 이를 격퇴하였다. 을묘일, 숙주 회적이 다시 돈황을 침범하자 문린이 지원하여 토벌하였다.십이월 신미일, 옛 유학자 장리상을 문묘에 종사하도록 하였다. 정축일, 향산의 도적 증대아폭 등이 난을 일으켰으나 붙잡아 처형하였다.이해에 조선·유구·베트남이 조공하였다.​십일년 임신년 봄 정월 병술삭, 연회를 중지하였다. 기축일, 연호를 기록하여 새 차례를 맞은 것을 이유로 형벌을 줄이라는 명을 내렸다. 문석은 병을 이유로 사직을 청하여 관직을 박탈당하였다. 신묘일, 계군이 베트남 종화를 회복하고 진산을 점령하였다. 계사일, 감숙군이 감평·대패평 등지의 도적 산채를 연이어 격파하고 태자사를 공격하였다. 경자일, 귀주군이 청평·황평·중안 등을 점령하였다. 신축일, 귀주를 지원한 호남군이 황표·백보의 묘족 산채를 점령하였다. 신해일, 시랑 숭후와 태상시 소경 하가호를 총리아국사무아문에서 근무하게 하였다.이월 경신일, 강소에서 쌀을 시험적으로 하운하는 것을 허락하고, 조운의 흰쌀과 곡식은 여전히 해운으로 운송하게 하였다. 병인일, 증국번이 사망하여 하남 빙상장 태부를 추증하였다. 무진일, 유금당의 직을 박탈하였으나 이전 공로로 일등 남작의 작위는 유지하게 하였다. 경오일, 팽옥린을 기용하여 장강 수군을 순찰하게 하였다. 갑신일, 후가림의 터진 제방이 다시 막혔다. 베트남 도적 우두머리 소국한 등이 처형되었다. 이달에 사천 각 지역의 재해 백성을 구휼하였다.삼월 을유삭, 귀주군이 정풍을 회복하였다. 병술일, 감숙군이 태자사의 회족 도적을 토벌하다가 패하여 제독 부선영과 서문수가 전사하였다. 제독 양세준은 황마괘를 박탈당하고 참장으로 강등되었다. 갑오일, 달르지 등의 죄를 면제하고, 여전히 관직은 박탈한 채 공을 세워 속죄하게 하였다. 정유일, 봉천의 도적이 조선 국경을 침범하므로 엄히 체포하라고 명하였다. 신축일, 서상이 사망하였다.이 봄에 호북 황피, 직례 안주, 감숙 하주 등지에서 난리를 입어 밀린 세금을 면제하였다.여름 사월 병진일, 회적이 정변과 정변을 침범하였으나 섬서군이 격퇴하였다. 기미일, 서녕 회족 우두머리 마점오, 섬서 회족 최삼, 미라구 회족 우두머리 치성림 등이 차례로 항복을 청하였다. 병인일, 회관에서 맡아 처리하던 업무를 중지하였다. 내무부에 절약을 힘쓰도록 명하였다. 기묘일, 통정사 부사 왕유진이 임금의 뜻을 미리 헤아려 받들고 효성으로 법도를 삼아야 한다는 내용의 상소를 올렸으나 엄중히 논의하라는 처분을 받고 곧 관직을 박탈당하였다. 이달에 귀주 흥의 등지에서 난리를 입어 밀린 세금을 면제하였다.오월 갑신삭, 일식이 있었다. 열하 등위기의 백성과 관리들에게 삼 년 동안 토지세와 부역을 면제하였다. 을유일, 삼월 초순부터 자희태후가 몸이 편치 않아 한 달 넘게 조회에 나오지 않았다. 이때 어사 이굉모가 자주 불러 대면 정사를 보도록 청하였으나, 경솔하게 행동했다는 이유로 꾸짖고 엄히 경계하였다. 계사일, 서점표의 군대가 숙주의 회족을 토벌하여 여러 차례 승리하였다. 좌종당이 성록이 재물을 낭비하고 일을 지연시킨 것을 탄핵하자, 목도선에게 조사하게 하였다. 을미일, 귀주의 묘족 도적이 평정되어 석보전에게 기도위를 하사하였다. 병신일, 섬서 회족 송전덕 등이 항복하였다. 이리에서 전사한 후 관직이 박탈되었던 상서 진부은과 그 가족에게 표창과 구휼을 더하여 시행하였다. 경자일, 이홍장을 대학사로 삼고 계속 직례총독 직을 맡게 하였다. 을사일, 운남군이 영평과 운남을 점령하였다.유월 갑오일, 주봉표가 관직에서 물러났다. 문상을 대학사로 삼고, 전경을 협판대학사로 삼았다. 정묘일, 올해 가을 심사와 조정 심사에서 사형 집행 결정을 중지하라고 명하였다. 단무겸을 협판대학사로 삼았다.​가을 칠월 계미삭, 운남군이 연합하여 흥의를 점령하였다. 기축일, 곽이객의 정기 공물을 면제하였다. 달목 몽골과 삼십구족의 재해를 입은 군민을 구휼하였다. 무술일, 회적이 영하 서로와 아라선기를 침범하여 소란을 일으켰으나 관군이 격퇴하였다. 기해일, 직례에서 상서로운 보리를 바쳤는데 어사 변보천이 이를 논박하는 상소를 올렸다. 이홍장에게 백성의 고통을 힘써 살피고 재해를 구제하도록 하며, 상서로운 징조를 지나치게 드러내어 꾸미지 말라고 명하였다. 경자일, 영정하 하류의 제방이 넘쳤다. 이달에 호남 황주에서 난리를 입어 밀린 세금을 면제하였다.팔월 경오일, 강북의 조운 쌀 십만여 석을 떼어 수도 주변의 수해를 입은 백성을 구휼하였다. 계유일, 김순이 일을 지연시킨 죄로 파면되고, 상순이 오리야소태 장군 직을 대신 맡았다. 신사일, 단무겸을 대학사로 삼았다.구월 계미일, 운남군이 조주·몽화와 대리 상하관을 점령하여 양옥과 이위술에게 황마괘를 하사하였다. 좌종당이 땅에서 상서로운 보리와 곡식이 났다고 보고하였으나, 이를 물리치라고 명하였다. 을미일, 황후 아로특씨를 책봉하고, 왕대신 이하에게 은혜를 베풀어 상을 내리고 천하에 조서를 반포하여 차등 있게 은혜를 베풀었다. 영정하 공사가 완성되어 제방이 막혔다. 병오일, 팽옥린이 병을 이유로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청한 것을 허락하고, 매년 장강 수군을 순찰하도록 명하였다. 경술일, 영전이 경부에게 전과 백성을 불러 회유하게 하고, 영렴 등의 기병대를 고이르갈오소에 주둔시키며 민병을 적절히 모집하게 하자고 청하였고, 이를 허락하였다.시월 정사일, 감숙에서 궤멸한 용사들의 우두머리 풍고산 등이 처형되었다. 기미일, 두 황태후에게 존호를 더 올렸다. 무진일, 광서 융안·잠계의 토적과 서륭의 묘족 도적이 평정되었다. 임인일, 군대를 지휘하는 대신들에게 파견 관리들을 단속하고, 소란을 일으키거나 기한을 넘기는 자를 처벌하라고 명하였다. 공친왕의 청을 받아 군기처의 옛 제도를 회복하였다. 병자일, 하경이 부모상을 이유로 물러나자 장수성이 양강총독을 대신 맡았다.십일월 을유일, 조선의 도적선이 국경을 넘어 침입하고 소란을 일으키자 도흥아 등의 수군이 추격하여 토벌하였다. 회적이 하미 동산을 침범하였으나 관군이 토벌하여 승리하였다. 궁정 시험과 향시·회시에서 청탁하거나 대신 응시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기묘일, 경주의 토적이 평정되고 도적 우두머리 하아만 등이 처형되었다. 신묘일, 운남군이 관역 등의 점거 도적을 토벌하여 운남 동부와 남부가 평정되었다. 을미일, 숙주 회적이 찰살극한의 여러 기로 달아났으나 관군이 격퇴하였다. 귀주군이 연합하여 신성을 점령하였다. 하강 묘족의 난을 장문덕의 군대가 토벌하여 제거하였다. 귀주 전체가 안정되었다. 병신일, 염군이 태호를 침범하였으나 수군이 토벌하여 평정하였다. 군민 가운데 가로회에 들어간 자가 자수하면 죄를 면제하도록 허락하였다. 정유일, 각 성에서 양귀비 재배를 금지한다는 명을 다시 내렸다. 신축일, 유금당 등의 군대가 회적을 토벌하여 크게 승리하였다. 정미일, 섬서군이 섬서 북부 이도하 등지의 도적을 토벌하여 섬멸하였다. 이홍장이 상선국을 설치하고, 시험적으로 윤선을 이용하여 강소와 절강의 조운 곡식을 나누어 운송할 것을 상주하였다.십이월 기미일, 티베트 주재 협판 덕태가 사건에 연루되어 직을 박탈당하고 기로 돌아갔다. 병진일, 이부·병부·이번원에 명하여 친정 이후 각 관청에서 황제의 재가를 청하는 문서와 군무 관련 상소는 모두 한문을 사용하게 하였다. 정묘일, 전흥서를 석방하여 돌아가게 하였다. 병자일, 좌종당이 병을 이유로 사직을 청하였으나 따뜻한 말로 거절하였다. 기묘일, 태묘에서 합동 제사를 지냈다.이해에 조선이 조공하였다.십이년 계유년 봄 정월 신사삭. 계미일, 관군이 나마특길소에서 회적을 공격하여 격파하였다. 병술일, 이종희를 양강총독 겸 통상대신으로 삼았다. 신축일, 성록이 가혹한 세금 징수와 반란 모의 혐의로 직을 박탈당하고 체포되어 심문받게 되었으며, 김순에게 그의 군대를 이어받도록 재촉하였다. 갑진일, 운남군이 대리를 점령하고 회족 우두머리 두문수·양영·채정동 등이 처형되었다. 잠육영에게 황마괘와 기도위 세습 직위를 하사하고, 유악소의 처분을 풀어주었으며, 양옥에게 기도위를 하사하였다. 을사일, 두 황태후가 친정 시기가 다가오자 교지를 내려 황제에게 “가문의 법도를 받들고, 사람을 등용하고 정사를 행하는 일을 힘쓰며, 학문을 게을리하지 말라”고 권하였다. 또한 조정 신하와 지방 신하들에게 “공평하고 충성스럽게 직무를 다하여 어려움을 크게 구제하라”고 당부하였다. 병오일, 황제가 직접 정사를 맡기 시작하고 조서를 내려 “자애로운 가르침을 공손히 따르고, 하늘을 공경하고 조상을 본받으며, 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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